13일 전 저런데 단골들 앉아서 노가리 2~3시간 까고 밥시켜먹고 같이 옷입어보고 서로 이쁘다 어울린다하면서 놀다가 마지막에 헤어질때 입어본것들중에 맘에 드는거 사가지고 가는 그런 시스템ㅋㅋ 9.9천 답글
답글 59개
@dhoiffhjfdcgymvv
9일 전 친구접대까지 해야하는구나 ㅋㅋㅋ 특이한 아주머니문화 765 답글
@jj.104
9일 전 @dhoiffhjfdcgymvv 20대들도 감. 그리고 한국여행올때 외국인들이 저런데 들러서 싸게사가고 311 답글
@맘사랑-i9y
8일 전 동네 아줌마 미용실도 비슷한거 아닌가. 동네 놀이터 415 답글
@수금토
8일 전 저도 동네에서 당한 동생 중 하나^^;; 34 답글
@figun755
8일 전 얼마나 정감가고 보기좋냐. 우리네 어머님들의 소소한 행복이다 그게 565 답글
@뽀로롱-r3t
8일 전 시스템 ㅋㅋㅋ 19 답글
@Nina-f5u1f
8일 전(수정됨) 맞아요 동네 보세집인데 이 언니가 디피는 날씬이들 입는거 해 놓구 혹시 하고 싸이즈 넉넉한거 물어보면 있다고 꺼냄 ㅋㅋ저도 초딩 아덜 ㅋ애 낳구 동네서 커피 한잔 마심서 수다 떨다가 사입어요 애 낳구 확찐자 되서 백화점 가면 우울하고 인터넷쇼핑은 구매하고 후회하기도 해서 보고 입어보구 없는건 주문 넣아놔요 그러면 언니가 알아서 옷 때옴 기깔남 ㅎㅎ한번도 실패 한적없고 두어달에 계절 변할때 네다섯벌 사고 가끔 그냥도 놀러가고 그래요 나만 그런게 아니고 나랑 성향 비슷한 줌마들 모임장소도 되구 그 옷가게 옆이 또 미용실이랑 마트까지 있으면 완전 망고땡임 442 답글
@Glennyglenny76
8일 전 이렇게 운영되는 거였어 오호.. 59 답글
@연남동독서실테러범
8일 전 @Nina-f5u1f 오호... 정보 감사합니다. 49 답글
@xlwpu0efdwer
8일 전 @Nina-f5u1f 직장 안다니고 애 키우느라 인간관계 단절되는데 다시 인간관계 활성화 돼서 좋네요 136 답글
@crystalk9128
7일 전 서로 이쁘다😂😂😂 14 답글
@user-6-t5s
7일 전 아 진짜??? 신기하다😂😂😂 9 답글
@user-fl1728
7일 전 맞음ㅋㅋㅋㅋㅋㅋ 인쇼는 귀찮고, 그렇다고 아울렛까지 가긴 싫은 아주머니들이 동네에서 수다도 떨고 실물로 보면서 옷도 사고 하는거임 나름 수요층이 있는 알짜배기 장사임~ 160 답글
@나무-q6f
7일 전 대신 주인 안목이 중요하겠네... 단골들 취향 사이즈 딱딱 맞춰야 142 답글
@김씨왕비마마마
7일 전 내가 초록색 좋아하는거 어떻게 알고 맨날 초록색 사입해오던 동네 아파트 상가 옷가게 언니 ㅋㅋ 맨날 밥 먹고 가래~ 77 답글
@leesage2876
7일 전 걍 동네미용실 느낌인가보네 단골장사만 하는 그런곳 33 답글
@보미서-b2j
6일 전 재밌겠다 7 답글
@i5p-i
6일 전 @Nina-f5u1f 망고땡이 친근하니 웃기네요 ㅋㅋㅋㅋ 32 답글
@nazinna132
6일 전 @Nina-f5u1f 앗 망고땡!!! 어디 지역 분이신진 모르겠지만 즤 엄마가 항상 만고땡! 이러셔서 너무 반갑네요ㅎㅎ 지금 아프셔서 예전같지 않으셔서 그런지 예전의 그 말투에 소소히 기뻐하고 지나갑니다! 항상 행복하세요 41 답글
@버터와플-y8j
6일 전 저기 이용하는 단골고객들 진짜 돈 많이써요.. 동네 사랑방 처럼 커피마시고 같이 밥먹고 수다 떨다가 옷 파는데 옷하나에 몇십만원하고 몇개씩 사가고..세트로 맞춰주고 그래요. 백화점 카피거나 백화점 뒤로 빼는 옷들 가져왔다고 하면서요. 저도 처음에는 잘 몰랐는데 동네 네일샵에서 일하면서 이모들이랑 수다떨면서 알았어요! 35 답글
@user-ge2dn1nc2q
6일 전 백화점 vvip급이네 4 답글
@user-ud9xe2ty1d
6일 전 @dhoiffhjfdcgymvv 아재들 단체 룸사롱 방문이랑 골프 투어보다야 수다 떨다가 옷 몇 벌 사가는 게 친목 도모도 하고 좋지 않나? 이게 글케 특이한 문화...? 74 답글
@Nina-f5u1f
6일 전 @nazinna132 경기도에 살고 있구요 만고땡 망고땡은 저도 엄마가 자주 하던 말을 어릴때부터 듣고 사용하다보니 ㅎㅎㅎㅎㅎㅎ 7 답글
@dhprince9245
6일 전 아는척은ㅋㅋ.응 아니야.저런집 대부분은 다른 용도임. 1 답글
@jha1819
6일 전 저런데 들어가면 주인장과 같이 앉아있는 손님들이 일단 경계함. 나 옷 입고 나올때마다 옆에서 같이 봄 ㅋㅋㅋㅋㅋㅋ 본인들 수다 떨다가 나 탈의실에서 나올 때마다 조용해짐ㅋㅋㅋㅋㅋㅋㅋㅋ 52 답글
@wave00
6일 전 말투 완전😂😂😂 @Nina-f5u1f 답글
@정윤호-m8e
5일 전 그래서 카페랑 같이하는데도 종종 있음 1 답글
@aventura4104
5일 전 당연히 망하는 가게가 더 많겠지 이걸 빨아주고 있네 1 답글
@발다프리크
5일 전 @jha1819 아 찜한 옷 가져갈까봐요? ㅋㅋㅋ 2 답글
@jha1819
5일 전 @발다프리크 아뇨 본인들의 영역에 낯선이가 들어와서요 ㅋㅋㅋ 30 답글
@user-ov9bg5wg000
5일 전 망고땡은 러키비키 뜻인가요? @Nina-f5u1f 4 답글
@leonagoyo3647
5일 전 @Nina-f5u1f 울엄마 단골집도 이런분위기임 심지어 미용실 겸업하셔서 머리도 여기서 하셨는데 손건강에 이상이 오면서 옷가게만 하시는데 미용실과 옷가게 분위기 똑같음 ㅋㅋㅋ 5 답글
@gjlms8443
5일 전 그런 여유가 있는 부잣집 사모님들 모임인가봐요. 부럽다.. 그런 여유가.. 3 답글
@문재앙의훠훠TV
5일 전 @jj.104 20대들이 저기서 옷구경하는거 한번도 못봄 구라ㄴㄴ 6 답글
@냥이냥-h2c
5일 전 나도 린넨 옷 그렇게 사요 맛있는 커피 예쁜잔에 마시면서 얘기하고 놀다 예쁜옷들 가져와요 나한테 보물같이 예쁜 린넨 옷들 5 답글
@aabbcc-e7p
5일 전 @jj.104 20대들이 저런곳간다고..? 어떤20대가? 보통 친구들하고 h&m 같은곳 가서 같이 골라주거나 인터넷 무신사에서 사지.. 외국인도간다고..? 지하상가랑 헷갈린거아님? 8 답글
@leonagoyo3647
5일 전 @user-ud9xe2ty1d 갈라치기 하지마용 우리집 아재는 친구들이랑 돈까스집 가고 피씨방 가서 스타하고 중고딩처럼 놀다 온단말이에용... 룸살롱 가느니 현질하고 말지... 3 답글
@성이름-q8d
4일 전 @leonagoyo3647 순수하노 ㅋㅋㅋ날잡고 폰까봐 8 답글
@minniekgt
4일 전 오 맞아요 맞아 몇년전에 그런 옷가게 단골로 있었는데 가면 옷 계산하고 나올때까지 두시간은 앉아있음~ 2 답글
@klobelimimi
4일 전 저런데 보면 다단계회사 화장품이나 건강식품 꼭 한두가지는 필수 7 답글
@leonagoyo3647
4일 전 @klobelimimi 미용실또는 카페 겸업인 경우도 가끔 있음 1 답글
@괭이-m1k
4일 전 다른지역오고 많이 안썼지만 망고땡 많이썼었어요ㅎㅎ 딱이야! 안성맞춤이야! 이런뜻으로쓰는것같네요 4 답글
@user-ov9bg5wg000 저는 경상도출신이구요
@고도리-z5v
4일 전 @ssu-u5e 즐기긴 ㅋㅋㅋㅋ 답글
@joohwankim896
3일 전 옷가게 사장이 미용실 가서 파마하면 미용실 사장이 옷가게가서 옷사는 그런 개념으로 돌아가게 되어있음 동네장사는 서로가 단골손님이면서 서로가 판매자들임 3 답글
@boarding14y
3일 전 와 존나신기하네 ㅋㅋㅋㅋㅋㅋㅋ 커피먹던 아지매들이 진짜 고객이었구나 ㅋㅋㅋ 4 답글
@IN-se1kj
3일 전 동네 미용실이나 옷가게에 죽치고 앉아있는 아지매들이 진짜 고객이었다니... 신기하네...진짜 친구만든다는 마인드로 즐겨야 영업이 되는 가게라니... 4 답글
@aurora_S2
3일 전 망고땡이 줄임말인가여?? 첨들어봄 답글
@이도-o8t
3일 전 ㅋㅋㅋㅋㅋㅋㅋㅋㅋ귀엽네요. 1 답글
@notforuseless
1일 전
본가 동네 옷가게도 이런 시스템이라서 ㅋㅋㅋㅋㅋ 찐임을 인정하고 갑니다
2 답글
@xlwpu0efdwer
1일 전 @yacht-responce 네 아저씨 1 답글
@Ggabuljima
1일 전 @나무-q6f 안목 구린집은 망해서 치킨집이나 컴포즈 커피 돼있음 2 답글
@choihongii6310
15시간 전 ㅇㅇ 맞음 답글
@Simon0830
14시간 전 와 그럼 이것도 도통 쉬운일인건 아니네요 일단 상대 안목이랑 스타일을 파악하는 눈이 좋아야겠고 무엇보다 넉살 좋고 사람 끌어당기는 매력있는 사람이 잘나가겠네요 영업직이네요 사실상 2 답글
@나나비-z4b
8시간 전 @Nina-f5u1f 강원도 산골짜기 울엄니 시방 83세 어릴때부터 듣고자람 만고땡 ㅋㅋㅋ 유추하건데 아마도 고도리치는 문화에서 생긴게 아닐까함 ㅎㅎ 답글
@Nina-f5u1f
5시간 전 @나나비-z4b ㅋㅋㅋㅋ 진짜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저희 엄니는 전라도 분이셨는데 살아 계셨다면 60대 중반쯤 되셨을것 같네요
ㅎㅎ 어머니 건강하시다면 잘 챙겨주세요
ㅎㅎ 있을때 잘해야 된다는게 맞드라구여 ㅎㅎ 답글
@penicillin_
6일 전 로판 읽으면 귀부인들이 부티크같은데서 차한잔 하면서 오늘은 무슨 드레스가 들어왔나요? 호호 하는 그런데임... 2.3천 답글
답글 15개
@b.k3756
6일 전 ㅋㅋㅋㅋㅋㅋㅋ아 윳겨 128 답글
@Wookjae
5일 전 호호 ㅋㅋㅋ 호호 넘 욱겨요ㅋㅋㅋ 78 답글
@뿡뿡-w5j
5일 전 호호😊 19 답글
@areyounlee9833
5일 전 악의 하인😂 1 답글
@박수빈-p2f
5일 전 저기는 귀부인들이 가는곳이구나 33 답글
@김로즈-k2f
4일 전 ㅋㅋㅋㅋ맞음..저도 예전에 많이 다녔었네요.. 3 답글
@만세촉수
4일 전 근데 진짜로 부인들이 가서 호호하고 웃으면서 옷살거같음 29 답글
@SeilPark89
3일 전 호호호호 3 답글
@kjslena
3일 전 ㅋㅋ맞아요 저희 엄마도 단골로가는데 항상 세트로 맞춰와서 몇십만원 우습게쓰고 옵니다. 티셔츠 히나나 더 껴서주거나. 이월상품을 더 싸게 빼서 주기도하고 암튼 아줌마들이 입털면 주변 언니.동생 싹데리고 오니 가게사장님도 영업력 보통이 아니심.. 36 답글
@괭이갈매기
1일 전 이해 완료 5 답글
@JINIQ
21시간 전 인터넷으로 팔아서 그런줄 답글
@cbr80615
12시간 전 아! 이렇게 비유해 주시니 찰떡처럼 알아 들었네요.ㅎㅎㅎ 지금 나레이션님도 딱 그거임... 답글
정확히 e^-W(-iπ/2) 입니다. (W는 람버트 W 함수) 이는 약 0.43828 + 0.36059i 입니다.
계산과정은 아래와 같습니다.
i^i^i^... = z 에서 i^(z) = z 이므로, zlni = lnz (iπ/2) z = lnz (lnz)/z = iπ/2 -(lnz)/z = -iπ/2 -1/z 을 e^(-lnz) 로 변형하면 (-lnz)e^(-lnz) = -iπ/2 람버트 W 함수의 정의(f(W) = We^W 의 역함수)에 의해, -lnz = W(ln(-iπ/2)) = W(-iπ/2) z = e^-W(-iπ/2)
13
답글
【관련 블로그 포스팅】
— '허수의 삼중나선'에 대한 몇가지 질문 (https://dmtpark.tistory.com/23)
— 복소 tetration 연산이 나타내는 놀랍도록 다양한 형태, 그리고 프랙탈 (https://dmtpark.tistory.com/21)
— Power Tower Fractal (https://dmtpark.tistory.com/22)
역사와 유전학의 예상치 못한 만남, 즉 그가 아프리카계 미국인이자 대통령이라는 사실 덕분에 버락 오바마는 미국의 인종적 유산에서 가장 논란이 많은 문제 중 하나인 배상금에 대한 논쟁을 재편할 수 있는 독특한 기회를 얻었습니다. 배상금은 미국 노예의 후손이 조상의 무급 노동과 속박에 대한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개념입니다.
우리가 지속적이고 흉악한 범죄에 걸맞는 신중한(상징적이지만) 제스처에 도달하기 전에 해결해야 할 까다로운 문제가 많이 있습니다. 아마도 가장 성가신 것은 엄청난 경제적 이익을 위해 인간을 잡아서 판매하는 데 직접적으로 연루된 사람들에게 책임을 어떻게 나누어야 할 것인가일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미국과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포르투갈, 스페인과 같은 유럽 식민지 강국이 수행한 역할에 대해 잘 알고 있지만 아프리카인들 자신이 수행한 역할에 대한 논의는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그 역할은 특히 서부 및 중부 아프리카의 노예 무역 왕국에 상당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여기에는 현재 가나에 있는 아산테 왕국의 아칸족, 다호메이(현재 베냉)의 폰족, 현대 앙골라에 있는 은동고의 음분두족, 오늘날 콩고의 콩고족 등이 포함됩니다.
수세기 동안 아프리카의 유럽인들은 해안에 있는 군사 및 무역 거점을 가까이에 두었습니다. 노예 무역이 절정에 달했을 때 노예로 팔려간 아프리카인들의 본거지인 내륙 탐험은 식민지 정복 기간 동안에만 이루어졌는데, 이것이 1871년 헨리 모튼 스탠리가 데이비드 리빙스턴 박사를 추적한 것이 언론에 설득력 있게 보도된 이유입니다. 그는 (백인) 사람이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노예들은 어떻게 이 해안 요새까지 왔을까? 보스턴 대학의 역사학자 존 손튼과 린다 헤이우드는 신세계로 운반된 노예의 90%가 아프리카인에 의해 노예가 된 후 유럽 상인에게 팔렸다고 추정합니다. 슬픈 진실은 아프리카 엘리트와 유럽 상인 및 상업 대리인 간의 복잡한 사업 파트너십이 없었다면 신세계로의 노예 무역은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적어도 그 규모로는 말입니다.
그 노예들의 후손에 대한 배상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아프리카인들이 무역에서 수행한 중요한 역할에 대한 이 어수선한 문제를 무시하고, 우리 조상들이 모두 사악한 백인 남성에게 몰래 납치당했다는 낭만적인 버전을 믿기로 선택합니다. 마치 "뿌리"에서 쿤타 킨테가 그랬던 것처럼요. 하지만 진실은 훨씬 더 복잡합니다. 노예 제도는 유럽인 구매자와 아프리카인 판매자 모두에게 매우 조직적이고 수익성이 좋은 사업이었습니다.
노예 무역에서 아프리카의 역할은 남북 전쟁 이전에도 많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에게 충분히 이해되고 공개적으로 인정되었습니다. Frederick Douglass에게 그것은 해방된 노예에 대한 송환 계획에 대한 주장이었습니다. "오랫동안 포로를 속박으로 팔고 그들에게 현금을 챙기는 데 익숙해져 온 아프리카 서부 해안의 야만적인 족장들은 메릴랜드와 버지니아의 노예상인들보다 우리의 도덕적, 경제적 아이디어를 더 기꺼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라고 그는 경고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노예 무역에 반대하기 위해 아프리카로 가는 것보다는 노예 무역에 반대하기 위해 여기 머무는 것을 덜 선호합니다."
확실히, 노예 무역에서 아프리카인의 역할은 1807년 이후 크게 줄어들었습니다. 그 당시 영국에서, 그리고 1년 후 미국에서 폐지론자들이 노예 수입을 금지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동안 미국 내에서는 노예가 계속 사고 팔렸고, 제도로서의 노예 제도는 1865년까지 폐지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미국 농장주들의 책임이 아프리카 노예상인들의 책임을 지우거나 대체하지는 않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일부 아프리카 지도자들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보다 이 복잡한 과거에 대해 논의하는 데 더 편안해졌습니다.
예를 들어 1999년 베냉의 마티유 케레쿠 대통령은 볼티모어의 흑인만으로 구성된 회중을 놀라게 하며 무릎을 꿇고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에게 아프리카인들이 무역에서 수행한 "부끄러운" "가증스러운" 역할에 대해 용서를 구했습니다. 가나의 제리 롤링스를 포함한 다른 아프리카 지도자들은 케레쿠 씨의 대담한 모범을 따랐습니다.
노예 무역에서 아프리카인의 개입 범위에 대한 우리의 새로운 이해는 역사적 추측이 아닙니다. 에모리 대학의 역사학자 데이비드 엘티스가 이끄는 대서양 노예 무역 데이터베이스 덕분에 우리는 이제 45만 명 이상의 아프리카 조상이 현재 미국으로 배편으로 나간 항구를 알게 되었습니다(이 데이터베이스에는 1514년부터 1866년까지 신세계 전역으로 배편으로 나간 1,250만 명의 기록이 있습니다). 미국 노예의 약 16%는 나이지리아 동부에서 왔고, 24%는 콩고와 앙골라에서 왔습니다.
THANKS to an unlikely confluence of history and genetics — the fact that he is African-American and president — Barack Obama has a unique opportunity to reshape the debate over one of the most contentious issues of America’s racial legacy: reparations, the idea that the descendants of American slaves should receive compensation for their ancestors’ unpaid labor and bondage.
There are many thorny issues to resolve before we can arrive at a judicious (if symbolic) gesture to match such a sustained, heinous crime. Perhaps the most vexing is how to parcel out blame to those directly involved in the capture and sale of human beings for immense economic gain.
While we are all familiar with the role played by the United States and the European colonial powers like Britain, France, Holland, Portugal and Spain, there is very little discussion of the role Africans themselves played. And that role, it turns out, was a considerable one, especially for the slave-trading kingdoms of western and central Africa. These included the Akan of the kingdom of Asante in what is now Ghana, the Fon of Dahomey (now Benin), the Mbundu of Ndongo in modern Angola and the Kongo of today’s Congo, among several others.
For centuries, Europeans in Africa kept close to their military and trading posts on the coast. Exploration of the interior, home to the bulk of Africans sold into bondage at the height of the slave trade, came only during the colonial conquests, which is why Henry Morton Stanley’s pursuit of Dr. David Livingstone in 1871 made for such compelling press: he was going where no (white) man had gone before.
How did slaves make it to these coastal forts? The historians John Thornton and Linda Heywood of Boston University estimate that 90 percent of those shipped to the New World were enslaved by Africans and then sold to European traders. The sad truth is that without complex business partnerships between African elites and European traders and commercial agents, the slave trade to the New World would have been impossible, at least on the scale it occurred.
Advocates of reparations for the descendants of those slaves generally ignore this untidy problem of the significant role that Africans played in the trade, choosing to believe the romanticized version that our ancestors were all kidnapped unawares by evil white men, like Kunta Kinte was in “Roots.” The truth, however, is much more complex: slavery was a business, highly organized and lucrative for European buyers and African sellers alike.
The African role in the slave trade was fully understood and openly acknowledged by many African-Americans even before the Civil War. For Frederick Douglass, it was an argument against repatriation schemes for the freed slaves. “The savage chiefs of the western coasts of Africa, who for ages have been accustomed to selling their captives into bondage and pocketing the ready cash for them, will not more readily accept our moral and economical ideas than the slave traders of Maryland and Virginia,” he warned. “We are, therefore, less inclined to go to Africa to work against the slave trade than to stay here to work against it.”
To be sure, the African role in the slave trade was greatly reduced after 1807, when abolitionists, first in Britain and then, a year later, in the United States, succeeded in banning the importation of slaves. Meanwhile, slaves continued to be bought and sold within the United States, and slavery as an institution would not be abolished until 1865. But the culpability of American plantation owners neither erases nor supplants that of the African slavers. In recent years, some African leaders have become more comfortable discussing this complicated past than African-Americans tend to be.
In 1999, for instance, President Mathieu Kerekou of Benin astonished an all-black congregation in Baltimore by falling to his knees and begging African-Americans’ forgiveness for the “shameful” and “abominable” role Africans played in the trade. Other African leaders, including Jerry Rawlings of Ghana, followed Mr. Kerekou’s bold example.
Our new understanding of the scope of African involvement in the slave trade is not historical guesswork. Thanks to the Trans-Atlantic Slave Trade Database, directed by the historian David Eltis of Emory University, we now know the ports from which more than 450,000 of our African ancestors were shipped out to what is now the United States (the database has records of 12.5 million people shipped to all parts of the New World from 1514 to 1866). About 16 percent of United States slaves came from eastern Nigeria, while 24 percent came from the Congo and Angola.
Henry Louis Gates Jr., a professor at Harvard, is the author of the forthcoming “Faces of America” and “Tradition and the Black Atlantic.”
노예제 비난 게임 종식
게시일: 2010년 4월 22일
(2/2페이지)
Thornton과 Heywood 교수의 연구를 통해 우리는 노예 무역의 희생자들이 50개에 불과한 소수 민족에 속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데이터와 DNA 검사를 통한 흑인 조상의 추적을 통해 우리는 아프리카 노예 무역의 희생자와 조력자의 신원을 더욱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많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에게 이런 사실은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변명은 다양합니다. "아프리카인들은 미국의 노예 제도가 얼마나 가혹한지 몰랐다", "비교해 보면 아프리카의 노예 제도는 인도적이었다", 또는 "악마가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의 기괴한 버전에서 "아프리카인들이 이런 짓을 한 것은 탐욕스러운 유럽 국가들이 제공한 전례 없는 이익 때문이었다".
하지만 슬픈 진실은 아프리카인을 정복하고 포로로 잡아 유럽인에게 판 것이 오랜 세월 여러 아프리카 왕국의 주요 외화 수입원 중 하나였다는 것입니다. 노예는 콩고 왕국의 주요 수출품이었습니다. 가나의 아산테 제국은 노예를 수출하고 그 수익을 금을 수입하는 데 사용했습니다. 17세기 Mbundu의 뛰어난 군주였던 Njinga 여왕은 포르투갈에 저항하는 전쟁을 벌였지만 내륙으로 500마일 떨어진 정치 조직을 정복하고 포로를 포르투갈에 팔았습니다. Njinga가 기독교로 개종했을 때, 그녀는 아프리카의 전통 종교 지도자들을 노예로 팔았고, 그들이 그녀의 새로운 기독교 교리를 위반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아프리카인들은 신세계의 노예 제도가 얼마나 가혹했는지 알고 있었을까? 사실, 그 시대에 많은 엘리트 아프리카인들이 유럽을 방문했고, 신세계를 가로지르는 지배적인 바람을 따라 노예선을 타고 그렇게 했다. 예를 들어, 콩고의 바티칸 대사인 안토니오 마누엘이 1604년 유럽에 갔을 때, 그는 먼저 브라질 바이아에 들러서 부당하게 노예가 된 한 동포를 해방하기로 했다.
아프리카 군주들 역시 같은 노예 경로를 따라 자녀를 보내 유럽에서 교육을 받게 했습니다. 그리고 수천 명의 전 노예들이 라이베리아와 시에라리온으로 돌아와 정착했습니다. 다시 말해, 중간 통로는 때때로 양방향 도로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프리카인들이 무지하거나 무고했다고 주장하기는 어렵습니다.
이처럼 놀라울 정도로 지저분한 역사를 감안할 때, 배상금에 대한 문제는 배상금이 좋은 생각인지 여부나 배상을 누가 받을 것인지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배상을 누구에게서 받을 것인지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바마 대통령은 어떻게 이 얽힌 문제를 풀 수 있을까? 데이비드 렘닉의 신간 "The Bridge: The Life and Rise of Barack Obama"에서 시카고 대학의 오바마 전 학생 중 한 명은 오바마 씨의 배상 운동에 대한 엇갈린 감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습니다. "그는 배상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우리에게 말했습니다. 그는 배상 이론 에 전적으로 동의했습니다 . 하지만 실제로는 그것이 실제로 실행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실용적인 면에 대해, 오바마 교수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보다 더 옳았을지도 모릅니다. 다행히도 아프리카계와 미국인의 자식인 오바마 대통령에게는 마침내 위대한 배상금 격차를 메울 수 있는 독특한 위치에 있는 지도자가 있습니다. 그는 문명 역사상 가장 큰 악 중 하나에 모두 연루된 대서양 양쪽의 백인과 흑인에게 책임과 유책성을 공개적으로 돌릴 수 있는 독특한 위치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이해에 도달하는 것은 분열적인 노예 배상금 문제에 대한 정의롭고 지속적인 합의에 필수적인 선행 조건입니다.
하버드 대학의 교수인 헨리 루이스 게이츠 주니어는 곧 출간될 "미국의 얼굴들"과 "전통과 흑인 대서양"의 저자입니다.
Ending the Slavery Blame-Game
Published: April 22,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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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rough the work of Professors Thornton and Heywood, we also know that the victims of the slave trade were predominantly members of as few as 50 ethnic groups. This data, along with the tracing of blacks’ ancestry through DNA tests, is giving us a fuller understanding of the identities of both the victims and the facilitators of the African slave trade.
For many African-Americans, these facts can be difficult to accept. Excuses run the gamut, from “Africans didn’t know how harsh slavery in America was” and “Slavery in Africa was, by comparison, humane” or, in a bizarre version of “The devil made me do it,” “Africans were driven to this only by the unprecedented profits offered by greedy European countries.”
But the sad truth is that the conquest and capture of Africans and their sale to Europeans was one of the main sources of foreign exchange for several African kingdoms for a very long time. Slaves were the main export of the kingdom of Kongo; the Asante Empire in Ghana exported slaves and used the profits to import gold. Queen Njinga, the brilliant 17th-century monarch of the Mbundu, waged wars of resistance against the Portuguese but also conquered polities as far as 500 miles inland and sold her captives to the Portuguese. When Njinga converted to Christianity, she sold African traditional religious leaders into slavery, claiming they had violated her new Christian precepts.
Did these Africans know how harsh slavery was in the New World? Actually, many elite Africans visited Europe in that era, and they did so on slave ships following the prevailing winds through the New World. For example, when Antonio Manuel, Kongo’s ambassador to the Vatican, went to Europe in 1604, he first stopped in Bahia, Brazil, where he arranged to free a countryman who had been wrongfully enslaved.
African monarchs also sent their children along these same slave routes to be educated in Europe. And there were thousands of former slaves who returned to settle Liberia and Sierra Leone. The Middle Passage, in other words, was sometimes a two-way street. Under these circumstances, it is difficult to claim that Africans were ignorant or innocent.
Given this remarkably messy history, the problem with reparations may not be so much whether they are a good idea or deciding who would get them; the larger question just might be from whom they would be extracted.
So how could President Obama untangle the knot? In David Remnick’s new book “The Bridge: The Life and Rise of Barack Obama,” one of the president’s former students at the University of Chicago comments on Mr. Obama’s mixed feelings about the reparations movement: “He told us what he thought about reparations. He agreed entirely with the theory of reparations. But in practice he didn’t think it was really workable.”
About the practicalities, Professor Obama may have been more right than he knew. Fortunately, in President Obama, the child of an African and an American, we finally have a leader who is uniquely positioned to bridge the great reparations divide. He is uniquely placed to publicly attribute responsibility and culpability where they truly belong, to white people and black people, on both sides of the Atlantic, complicit alike in one of the greatest evils in the history of civilization. And reaching that understanding is a vital precursor to any just and lasting agreement on the divisive issue of slavery reparations.